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르코 크로캅 (문단 편집) === 그 외 === 생계를 위해 나이트 클럽의 [[바운서]]로 일한 적이 있다. 프로 파이터 입성전엔 태권도와 아마추어 복싱45전의 경험이 있었다고 하며, K-1 파이터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건 초대 K-1 그랑프리 챔피언이였던 [[브랑코 시카틱]]의 티가짐에서 훈련을 하면서부터였고, 당시 시카틱은 자신의 링네임이였던 Tigar '티가'(크로아티아 말로 호랑이라는 뜻)를 미르코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어느날 미르코는 티가짐을 탈퇴한후 '크로캅'이라는 새 링네임과 함께 자신의 체육관인 Crocop Squad Team을 만들게된다. 티가짐 탈퇴이유는 미르코가 시카틱의 교육방식이 맘에 안들어서라는 설과, 시카틱이 미르코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설이 있지만 아직도 정확히 탈퇴사유를 알수없다. 그러나 현재 시카틱과 크로캅과의 사이를 보면 후자가 맞는 듯 싶다. 또 이 이후 시카틱이 감옥에 갔다가 크로캅 이름을 팔아서 나온 일이 있다고 한다. 전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돈 문제때문에 갈라져서 시카틱이 K-1에 크로캅을 출전시키지 마라고 사주했고 크로캅은 96년~99년 사이 K-1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사실 여부는 불확실.) 2000년대 초중반 일본의 종합격투기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은 선수. 입식 무대에서 넘어와 효도르, 노게이라와 함께 PRIDE 3강 체제를 구축했고 효도르와 타이틀 매치를 갖기도 하는 등 PRIDE K-1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파일:external/pds18.egloos.com/e0066657_4cd759520ae50.jpg]] 이런 시절도 있었다. 인기나 흥행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톱파이터 수준이다. PRIDE 시절부터 효도르, 노게이라보다 높은 흥행력으로 거액의 몸값을 받고 있었고 UFC에 이적한 뒤에도 드림과 양다리를 걸치며 협상을 통해 높은 파이트머니를 받아냈다. 고국인 크로아티아를 포함하여 유럽,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다. [[미국]]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으나 UFC에서 오랫동안 활약했기 때문에 레전드로서 충분히 예우받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효빠와 캅빠의 고질적인 대립으로 인해 많이 왜곡된 감이 있다. PRIDE의 인기가 한창이던 2004년 ~ 2005년 무렵부터 시작된 감정적인 대립이 201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크로캅과 효도르라는 두 명의 전설에 누를 끼치고 있는 상황. 특히 크로캅은 격갤의 전성기였던 2005년 당시 격갤이 효빠들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디씨인들의 집중포화를 맞아 이미지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2007년 이후 격갤의 주도권이 캅빠에게 넘어가지만 그때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UFC를 지지하면서 UFC에 안 오는 효도르를 까는 안티들[* 물론 이런 성향을 보였던 이들이 모두 캅빠라는 건 아니다. 또한 격갤은 2007년 이후로는 UFC를 지지하고 프라이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되었기에 프라이드의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던 효도르와 크로캅 둘 다 많이 까이게 되었고 2007년 이후에도 크로캅을 조롱하는 분위기(특히 곤자가 전 패배 이후)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2008년 이후로는 크로캅이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헤비급 중심 전선에서 물러나게 되어(더불어 캅빠들의 찬양도 수그러들면서) 크로캅을 까는 것이 전보다 줄어들은 탓도 있다. 첨언하자면 2006년 이후의 캅빠와 효빠간의 전장은 주로 격갤이 아닌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였으며 UFC를 지지하는 캅빠나 그 외의 단체를 지지하는 효빠 성향이 많이 나타난것도 이들 카페였다.]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크로캅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보여주던 독설이나 여러 단체와의 협상에서 보여주던 강격한 대응, 혹은 떡밥매치들을 비꼬았는데, 이때 만들어진 무수한 짤방들은 지금도 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실은 크로캅이 경기 외적으로까지 문제가 되는 선수는 아니다. 거만한 성격은 그의 캐릭터에 불과하며 매번 쏟아내는 독설은 자신을 캐릭터로 상품화시키려는 일환이다.[* 이런 성향은 주로 상품성을 주요시 여기는 일본 무대에서 많이 보였는데, [[고미 타카노리]], [[최홍만]] 등이 그랬다.] 가장 논란이 되는 떡밥매치 역시 당시 MMA 단체들의 선수풀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강행군으로 컨디션을 상했으면 상했지.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MMA 시장이다보니 그때그때의 금전에 집착하게 되는 것. 무엇보다 크로캅은 그의 커리어나 기량 뿐 아니라 현재의 MMA를 만들어낸 선수 중 한명이라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그의 파이팅은 90년대 후반 일본의 격투기 붐을 일으켰던 K-1에서부터 PRIDE, UFC[* 실제로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UFC가 인기를 많이 얻은 것도 그가 UFC로 이적한 이후였다.]를 넘나들며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켰고, 그 많은 시합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MMA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몰락한 후에도 팬들은 여전히 그의 퍼포먼스에 열광했던 것이다. 전성기 시절에 1년에 약 8경기를 뛰면서 영화도 찍고 축구 경기도 뛰는 둥 강행군+겸직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을 많이 상했기 때문에 결국 이는 노쇠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http://www.mfight.co.kr/news/news_view.php?bcode=1&lcode=1&mcode=6&scode=1&number=25459|크로캅이 사쿠라바 전을 앞두고 출전을 거부해서 파이트머니를 2배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 매니저의 입을 통해 뒤늦게 밝혀져서 논란이 되고 있다. 크로캅 본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파이트머니를 2배로 불렸던 적이 있던건 인정하지만 출전 거부 및 다른 사실과 전 매니저란 사람 자체가 원래 자기 매니저가 아니였다고 밝히면서 부인 중이다. 1990년대 중반 국내 태권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적도 있다. 크로캅 본인이 2015년 UFC 한국 대회 참여를 앞두고 [[http://m.tf.co.kr/read/sports/1578373.htm?retRef=Y&source=|밝히기도 했다]]. "일본은 제2의 조국"이라며 자신을 키워준 일본 격투기 무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밝혔다. 2015년 9월 한국을 방문하여 팬간담회를 가졌다. UFC의 전직 캐스터 [[성승헌]]의 사회와 UFC의 한국해설자이자 종합격투기 선수인 [[김대환]]의 통역 하에 1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5162|1부]],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5163|2부]],[[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9&aid=0000005164|3부]] 입장음악은 빌보드 2위까지 올랐던 The Wild Boys. [[듀란 듀란|Duran Duran]]의 노래다. 프라이드에서 잠시 사용했던 음악인 Dodji u Vinkovce[* 직역하면 '빈코브치에 돌아와요'. 빈코브치는 미르코가 태어난 도시.]도 있다. 또한 캐나다 프로레슬러 [[랜스 스톰]]과 닮은꼴로 유명한데 둘이 형제나 사촌 혹은 친척이냐고 하거나 그렇게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